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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궁전

왕의 노마드 삶과 왕궁

네테세이 2017. 7. 6. 22:19

프랑스 왕이 자신의 가족과 귀족들, 그리고 국가를 돌보는 일을 하는 관리들과 하인들을 모두 데리고 왕궁을 이동하며 사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했었다.

루이14세는 선대의 왕들에게서 수십개의 왕궁(샤토)을 물려받았다. 

파리에 왕궁은 남아있는 것이 5개, 허물어진 것까지 하면 10개 가량, 파리 주변의 가까운 곳에 있는 왕궁만도 10개 이상된다.


왕이 이동을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고, 특히 전쟁, 정치, 외교, 사냥, 전염병, 위생 등을 꼽을 수 있다.

전쟁

중세이래의 영토 확장 전쟁은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어야 했고, 왕이 전쟁터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때로는 왕이 전쟁을 가면서, 왕비를 비롯한 왕실의 귀족들을 동반하기도 했다.

정치

오늘날에도 정치인이 표를 얻기 위해서, 국민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는 정치적 행위가 있다. 

특히 프랑스의 왕들은 백성들에게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때문에 왕궁도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다.

카트린 드 메디치는 자신의 어린 아들(샤를9세)이 왕위에 올랐을때 2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왕을 소개하는 여행을 했다.

그렇게 왕이 지방을 다니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거두어들인 세금을 직접 가져가기도 했다.  

외교

루이14세는 스페인의 공주 마리테레즈와 피레네의 마을 성당에서 결혼을 했다.

피레네는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이 접한 지역이었고, 왕이 왕비를 맞기위해 이동한 것이다.

외국에서 왕이나 왕비가 방문하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맞이행사를 위해서 왕실이 이동하는 것이다.

사냥

사냥은 왕의 오락이기도 하지만, 전쟁의 훈련이기도 했다. 전략을 세우고, 자신의 무리들을 이끄는 지도력을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왕들은 사냥철에 따라 선호하는 왕궁이 있었다. 특히 퐁텐블로성은 가을에 왕들이 자주 머물며 사냥을 한 곳이다.

루이14세가 베르사이유궁에 정착을 한 이후에도 매년 가을에는 퐁텐블로성으로 사냥을 하러 갔다. 

전염병

도시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왕궁과 그 주변에 전염병이 돌면, 특히 아직 어린 왕세자나 왕자 공주들을 제일 먼저 다른 궁으로 대피시켰다.

루이14세가 자신의 남동생과 처음으로 베르사이유영지의 자신의 아버지 루이 13세의 사냥별장에 온 것도, 

당시 머물고 있던 생제르망앙레성에 전염병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위생

당시의 왕궁에 대해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은 바로 지금과 같은 위생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지금의 화장실이나 수도, 하수도 등이 없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머물며 오물이 쌓이면, 다른 궁으로 이동하고, 그동안 비어진 궁은 열심히 청소를 해서 다시 원상복귀를 하는 식이었다.


왕이 이동을 할때에는 자신의 가구들도 모두 함께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왕과 왕실이 이동할 때에는 수많은 말과 마차들이 함께 이동했고, 그 행렬은 대단히 길었다.

말과 마차는 지금의 자동차에 해당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고, 특히 왕실이 대규모로 이동하면, 왕궁 주변의 마을이나 도시는 그에 따라 큰 영향을 받았다.